고스트 고스트
중간지점 하나 | 2.15~3.1 2025
개인전
빛나는 건 변하지 않는 건,
언제나 여기에 내 안에—
조유진 개인전 «고스트 고스트»에 부쳐
이채원(전시기획)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물은 그저 묵묵히 어제도 흘렀고 그리고 모습 없는 모습으로 오늘도 내일도 출렁이며 흐를 것이다. 이 끝없는 순환의 일렁임이 그 흘러감의 신비가 조유진 작가에게도 스며들었다.
작가는 지난 개인전 «미끄러지는»(2024, 서진아트스페이스)에서 물을 모티브로한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당시 작업들에서 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존재로 드러난다. 푸른 색채의 표면과 섬세한 곡선이 고요히 유영하는 듯 구조적으로 서로 미끄러지는 표현 방식에서 물의 운동과 순환을 긍정하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 «고스트 고스트»에서 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긍정 그 이상으로 더 나아간다. 단순히 물이라는 대상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을 넘어, 대상과 닮아가고자 하는 적극적 태도가 그것이다. 먼저 작가가 물을 다루는 형식에서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작가는 기존에 해오던 유화와 더불어 수채화, 모노타이프 판화 그리고 유리 오브제까지 표현 형식의 범위를 다양화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유진의 물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으며 흐르고 스며들어 변화를 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수채화는 물의 특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물과 안료가 만나 종이 위에서 자연스럽게 번지고 스며드는 수채화 형식을 통해 작가는 물의 유연한 태도를 이미지로 소환한다. 모노타이프 판화에서 이러한 태도는 한층 더 적극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모노타이프(monotype)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 한번(mono)만 찍을 수 있는 판화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판화가 동일한 이미지를 여러 번 복제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모노타이프는 잉크나 물감을 평평한 판에 그린 후 단 한번만 종이에 찍어내는 형식이다. 이처럼 모노타이프가 가진 상반된 특성들 즉, 드로잉을 통해 그리는 이의 의도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자유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종이에 잉크가 안착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연이라는 숙명에 맡겨야 하는 이 특성들은 어쩌면 물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여 작가는 모노타이프 형식을 통해 물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려 시도한다. 이는 잉크가 프레스기를 통과하며 압착되는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우연한 효과들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시각적 변주를 끌어내는 지점에서 엿볼 수 있다.
«고스트 고스트»에서 처음 선보인 모노타이프 시리즈의 어둠과 밝음의 대비는 이러한 시각적 변주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는 비켜가고 교차하는 영속적인 물길 표면 위에 부딪히며 빛을 반짝이는 일회적 찰나들에 주목한다. 영원과 순간의 우연한 마주침 사이에 탄생한 그것, 윤슬. 작가는 모노타이프를 통해 윤슬을 따라가고, 간직하고, 품는다. 모노타이프에 윤슬이 남겨지기 위해서는 단 한번(mono)의 시도, 다시 말해 1도 인쇄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작가는 1도 이미지에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 그 사이를 파고들며, 여러 색채의 레이어로 윤슬의 존재를 다시금 열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서 고스트 이미지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첫 번째 인쇄 후 남은 잉크로 한번 더 찍어낸 이미지인 고스트 이미지는 흐릿하고 희미해서 대개 실패한 이미지로 간주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불완전하고 무너진 모습으로 남은 이미지를 윤슬의 은유로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자유와 해방을 찾아 나갈 힘이 내장된 가능성의 장소로 역전시킨다. 그의 모노타이프는 단 한번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순환하는 물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작가가 옹호하는 것은 단순히 윤슬의 밝음이 아니다. 어둠과 밝음, 영원과 순간, 필연과 우연 모두를 포용하며 그 사이에서 반짝이며 생동하는 힘 그 존재 자체를 믿는다. 이 힘을 작가는 윤슬의 반짝임에서 찾는다. 윤슬은 모든 것이 한 때의 형식이었음을 알게 하는 매체이며, 고스트이미지, 고스트의 고스트 이미지 등 반복과 중첩을 통해 단단하게 추상해냄으로써 그 우연한 무너짐을 용서한다. 밝음과 어둠의 마주침을 기꺼이 감당하는 힘은 윤슬처럼 빛나고, 빛나는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견고한 의지로 내 안에, 우리 안에 생동함을 믿기 때문이다.
추신.
전시장 한 켠에 빛나는 유리 오브제 작업들은 이번 전시의 작은 여담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의 본질을 탐구하던 작가가 우연히 마주한 또 다른 가능성의 흔적이랄까? 윤슬처럼 반짝이는 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당신의 내면에 생동하는 빛을 반사하고, 투과하고, 굴절시키기를 바란다.
고스트 고스트
중간지점 하나 | 2.15~3.1 2025
개인전
빛나는 건 변하지 않는 건,
언제나 여기에 내 안에—
조유진 개인전 «고스트 고스트»에 부쳐
이채원(전시기획)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물은 그저 묵묵히 어제도 흘렀고 그리고 모습 없는 모습으로 오늘도 내일도 출렁이며 흐를 것이다. 이 끝없는 순환의 일렁임이 그 흘러감의 신비가 조유진 작가에게도 스며들었다.
작가는 지난 개인전 «미끄러지는»(2024, 서진아트스페이스)에서 물을 모티브로한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당시 작업들에서 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존재로 드러난다. 푸른 색채의 표면과 섬세한 곡선이 고요히 유영하는 듯 구조적으로 서로 미끄러지는 표현 방식에서 물의 운동과 순환을 긍정하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 «고스트 고스트»에서 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긍정 그 이상으로 더 나아간다. 단순히 물이라는 대상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을 넘어, 대상과 닮아가고자 하는 적극적 태도가 그것이다. 먼저 작가가 물을 다루는 형식에서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작가는 기존에 해오던 유화와 더불어 수채화, 모노타이프 판화 그리고 유리 오브제까지 표현 형식의 범위를 다양화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유진의 물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으며 흐르고 스며들어 변화를 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수채화는 물의 특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물과 안료가 만나 종이 위에서 자연스럽게 번지고 스며드는 수채화 형식을 통해 작가는 물의 유연한 태도를 이미지로 소환한다. 모노타이프 판화에서 이러한 태도는 한층 더 적극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모노타이프(monotype)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 한번(mono)만 찍을 수 있는 판화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판화가 동일한 이미지를 여러 번 복제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모노타이프는 잉크나 물감을 평평한 판에 그린 후 단 한번만 종이에 찍어내는 형식이다. 이처럼 모노타이프가 가진 상반된 특성들 즉, 드로잉을 통해 그리는 이의 의도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자유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종이에 잉크가 안착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연이라는 숙명에 맡겨야 하는 이 특성들은 어쩌면 물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여 작가는 모노타이프 형식을 통해 물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려 시도한다. 이는 잉크가 프레스기를 통과하며 압착되는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우연한 효과들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시각적 변주를 끌어내는 지점에서 엿볼 수 있다.
«고스트 고스트»에서 처음 선보인 모노타이프 시리즈의 어둠과 밝음의 대비는 이러한 시각적 변주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는 비켜가고 교차하는 영속적인 물길 표면 위에 부딪히며 빛을 반짝이는 일회적 찰나들에 주목한다. 영원과 순간의 우연한 마주침 사이에 탄생한 그것, 윤슬. 작가는 모노타이프를 통해 윤슬을 따라가고, 간직하고, 품는다. 모노타이프에 윤슬이 남겨지기 위해서는 단 한번(mono)의 시도, 다시 말해 1도 인쇄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작가는 1도 이미지에 남겨진 것과 사라진 것 그 사이를 파고들며, 여러 색채의 레이어로 윤슬의 존재를 다시금 열어놓는다. 그리고 여기서 고스트 이미지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첫 번째 인쇄 후 남은 잉크로 한번 더 찍어낸 이미지인 고스트 이미지는 흐릿하고 희미해서 대개 실패한 이미지로 간주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불완전하고 무너진 모습으로 남은 이미지를 윤슬의 은유로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자유와 해방을 찾아 나갈 힘이 내장된 가능성의 장소로 역전시킨다. 그의 모노타이프는 단 한번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순환하는 물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작가가 옹호하는 것은 단순히 윤슬의 밝음이 아니다. 어둠과 밝음, 영원과 순간, 필연과 우연 모두를 포용하며 그 사이에서 반짝이며 생동하는 힘 그 존재 자체를 믿는다. 이 힘을 작가는 윤슬의 반짝임에서 찾는다. 윤슬은 모든 것이 한 때의 형식이었음을 알게 하는 매체이며, 고스트이미지, 고스트의 고스트 이미지 등 반복과 중첩을 통해 단단하게 추상해냄으로써 그 우연한 무너짐을 용서한다. 밝음과 어둠의 마주침을 기꺼이 감당하는 힘은 윤슬처럼 빛나고, 빛나는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견고한 의지로 내 안에, 우리 안에 생동함을 믿기 때문이다.
추신.
전시장 한 켠에 빛나는 유리 오브제 작업들은 이번 전시의 작은 여담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의 본질을 탐구하던 작가가 우연히 마주한 또 다른 가능성의 흔적이랄까? 윤슬처럼 반짝이는 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당신의 내면에 생동하는 빛을 반사하고, 투과하고, 굴절시키기를 바란다.